[21] 나는 대상들을 반드시 다르게 볼 것이다.
내가 지금 보는 것은 다만 병과 재난과 죽음의 징후들일 뿐이다. 이것은 하느님이 당신의 사랑하는 아들을 위해 창조하신 것일 수 없다. 내가 그런 것들을 본다는 사실이 바로 내가 하느님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증거이다. 그러므로 나는 그분의 아들 또한 이해하지 못한다. 내가 보는 것은 나에게, 나는 내가 누구인지 모르고 있음을 말해준다. 나는 반드시 내 안의 진리에 대한 증인들을 볼 것이다. 나 자신에 대한 환상을 보여주는 증인들 대신에 말이다.
[22] 내가 보는 것은 복수의 한 형태이다.
내가 보는 세상은 결코 사랑하는 생각들의 표현이 아니다. 그것은 모든 것이 모든 것을 공격하는 그림이다. 그것은 결코 하느님의 사랑과 그분의 아들의 사랑을 반영하지 않는다. 이 그림을 일으킨 것은 나 자신의 공격 생각들이다. 나의 사랑하는 생각들은 세상에 대한 이런 지각으로부터 나를 구하고, 하느님이 내가 갖도록 하신 평화를 줄 것이다.
[23] 나는 공격 생각들을 포기함으로써 세상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바로 여기에 나의 구원이 있다. 다른 어디에도 구원은 없다. 공격 생각들이 없었다면, 나는 공격의 세상을 볼 수 없었을 것이다. 내가 용서를 통하여 사랑을 다시 의식할 때, 나는 평화와 안전과 기쁨의 세상을 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지금 내가 보는 것 대신에, 내가 보기로 선택하는 것이다.
[24] 나는 나 자신의 최선의 이익을 지각하지 못한다.
나는 내가 누구인지 모르는데 어떻게 나 자신의 최선의 이익을 알아볼 수 있겠는가? 내가 나의 최선의 이익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단지 나를 환상들의 세상에 더 단단히 묶어둘 뿐이다. 나 홀로는 나 자신의 최선의 이익을 지각할 수 없음을 인식하고 있기에, 나는 하느님이 내게 보내주신 안내자를 기꺼이 따를 것이다. 하느님은 나 자신의 최선의 이익이 무엇인지 발견하도록 그를 내게 보내셨다.
[25] 나는 어떤 것이든 그것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 알지 못한다.
내게 있어서, 모든 것의 목적은 나 자신에 대한 나의 환상들이 실재임을 증명하는 것이다. 바로 이 목적을 위해 나는 모든 사람과 모든 것을 이용하려 한다. 나는 세상의 목적도 이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므로 나는 세상의 참된 목적을 인식하지 않는다. 내가 세상에게 부여한 목적은 세상에 대한 무서운 그림을 초래했다. 내가 세상에 부여한 목적을 거둬들이고 세상에 대한 진리를 배움으로써, 세상의 참된 목적에 내 마음을 열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