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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일차 - 복습 [26] 나의 공격 생각들이 나의 상처받을 수 없음을 공격한다. 내가 나 자신이 끊임없이 공격받고 있다고 본다면, 내가 누구인지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고통, 병, 상실, 노화, 그리고 죽음이 나를 위협하는 듯이 보인다. 나의 모든 희망과 바람 그리고 계획은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세상의 손에 달려있는 듯이 보인다. 그러나 완벽한 안전과 완전한 성취가 나의 유산이다. 나는 내가 보는 세상을 얻기 위하여 내 유산을 포기하려고 애써왔다. 그러나 하느님이 나를 위해 내 유산을 안전하게 간직해 오셨다. 나 자신의 참된 생각들이 그것이 무엇인지 내게 가르쳐 줄 것이다. [27] 다른 무엇보다도 나는 보기를 원한다. 내가 보는 것은 내가 무엇인지에 대한 나의 생각을 반영한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기에, 나는 내게 가..
55일차 - 복습 [21] 나는 대상들을 반드시 다르게 볼 것이다. 내가 지금 보는 것은 다만 병과 재난과 죽음의 징후들일 뿐이다. 이것은 하느님이 당신의 사랑하는 아들을 위해 창조하신 것일 수 없다. 내가 그런 것들을 본다는 사실이 바로 내가 하느님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증거이다. 그러므로 나는 그분의 아들 또한 이해하지 못한다. 내가 보는 것은 나에게, 나는 내가 누구인지 모르고 있음을 말해준다. 나는 반드시 내 안의 진리에 대한 증인들을 볼 것이다. 나 자신에 대한 환상을 보여주는 증인들 대신에 말이다. [22] 내가 보는 것은 복수의 한 형태이다. 내가 보는 세상은 결코 사랑하는 생각들의 표현이 아니다. 그것은 모든 것이 모든 것을 공격하는 그림이다. 그것은 결코 하느님의 사랑과 그분의 아들의 사랑을 반영하지 않는다..
54일차 - 복습 [16] 나는 중립적인 생각은 전혀 갖고 있지 않다. 중립적인 생각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모든 생각은 힘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생각들은 거짓 세상을 만들거나 그렇지 않으면 나를 실재 세상으로 이끌 것이다. 그러나 생각들은 결과가 없을 수 없다. 내 생각의 오류들로부터 내가 보는 세상이 일어나듯이, 내 오류들이 교정되도록 할 때 내 눈 앞에 실재 세상이 일어날 것이다. 내 생각들이 진실도 아니고 거짓도 아닐 수는 없다. 내 생각들은 진실이거나 아니면 거짓이어야 한다. 내가 보는 것이 내 생각들이 둘 중 어느 것인지를 보여준다. [17] 나는 중립적인 것은 아무것도 보지 않는다. 내가 보는 것은 내가 무엇을 생각하는지 분명히 보여준다. 내가 생각하지 않았다면 나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생명은 ..
53일차 - 복습 [11] 나의 의미 없는 생각들이 내게 의미 없는 세상을 보여준다. 내가 의식하고 있는 생각들은 아무것도 의미하지 않기에, 그것들을 생생하게 나타내는 세상은 아무런 의미도 가질 수 없다. 이 세상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은 제정신이 아니다. 따라서 그것이 만들어내는 것도 제정신이 아니다. 실재는 미치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제정신이 아닌 생각들과 마찬가지로 참된 생각들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내가 보는 것에 대한 나의 안내자로서 나의 참된 생각들에 의지한다면 나는 실재 세상을 볼 수 있다. [12] 내가 속상한 이유는, 내가 의미 없는 세상을 보기 때문이다. 제정신이 아닌 생각들은 속상하게 한다. 그것들은 아무런 질서가 없는 하나의 세상을 만들어 낸다. 오직 혼돈만이 혼란스러운 생각을 나타내는 세상을 지배..
52일차 - 복습 [6] 나는 없는 것을 보기 때문에 속상한 것이다. 실재가 나를 속상하게 만들기는 불가능하다. 실재는 오직 완전한 평화만을 가져온다. 내가 속상한 이유는 언제나 내가 지어낸 환상들로 실재를 대체했기 때문이다. 환상들은 속상하게 한다. 왜냐하면 내가 환상들에게 실재성을 부여했고 따라서 실재를 하나의 환상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하느님이 창조하신 것들 중에 아무것도 이러한 나의 혼란에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받지 않는다. 나는 항상 아무것도 아닌 것에 의해서 속이 상한다. [7] 나는 오직 과거만 본다. 나는 주위를 둘러보면서, 내가 바라보는 세상을 단죄한다. 나는 이것을 봄(seeing)이라고 부른다. 나는 과거를 가지고 모든 사람과 모든 것을 비난한다. 그럼으로써 그들을 나의 "적들"로 만든다. 내가 나 자..
51일차 - 복습 - 너의 학습 목적은 너로 하여금 늘 고요함을 지니고 다닐 수 있게 하고, 또한 괴로움과 혼란을 치유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이것은 괴로움과 혼란을 피하고 너 혼자만의 고립된 피난처를 구하는 것으로써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너는 머지않아 평화는 너의 일부로서 단지 네가 처한 어떤 상황이든 그 자리에서 받아들일 것만을 요구한다는 사실을 배우게 될 것이다. [1] 내가 보는 것은 아무것도 의미하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아닌 것을 보며, 아무것도 아닌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보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음을 알아차림으로써 그것을 보내버려야만 한다. 그럼으로써 비전이 그 자리를 차지할 수 있게 된다. [2] 내가 보는 것이 내게 가지는 모든 의미는 내가 준 것이다. 나는 내가 바라보는 모..
생각의 폭풍에 휩쓸릴때 너무 많은 생각에 휩쓸릴 때가 있다. 그리고 그 생각에 의해 괴로워하는 '나'가 있다고 느낄 때가 있다. 그러나 수많은 생각이나 괴로워하는 '나'나 모두 환상이며 실재하지 않는다. 알아차림의 순간 한 걸음 뒤로 물러나게 된다. 배경의 의식을 의식하며 마음은 가라앉는다. 의식이라고 일컬어지는 것은 공간space, 배경으로 비유될 수 있을 것이다. 생각은 왔다가 가고 감정도 왔다가가 가며, 괴로워하는 나도 왔다가 가고 즐거워하는 나도 왔다가 간다. 이렇게 왔다가 가는 것이 어디에서 이루어지는가? 누구에게 이루어지는가? 계속해서 무언가를 붙잡고 늘어지는 마음의 폭풍 저변에 변치 않는 의식이 있다. 그 모든 감정과 생각의 쓰레기더미의 배경이라고 표현될 수 있을 것 같다. 고요히 침잠하라는 가르침은 이 의식으로서..
50일차 - 나는 하느님의 사랑에 의지해 살아간다. I am sustained by the Love of God. - 이 세상에서 너는 하느님을 제외한 모든 것에 의지해 살아간다고 믿는다. 네가 신뢰를 주는 것들은 가장 하찮으면서 정신 나간 상징들이다. 그것들은 알약, 돈, "보호해 주는" 옷, "영향력", "명망", 인기, "적절한" 사람들을 아는 것, 그밖에 네가 마법적인 힘을 부여하는, 끝없는 무(無)의 형식들의 목록이다. 이 모든 것들로 너는 하느님의 사랑을 대체한다. - 이 모든 것들은 몸과의 동일시를 보장하기 위하여 소중하게 여겨지는 것들이다. 그것들은 에고에게 바치는 찬가들이다. - 오직 하느님의 사랑만이 모든 상황에서 너를 보호해 줄 것이다. 그것은 모든 시련에서 너를 건져낼 것이며, 이 세상에서 지각되는 모든 위험 위로 너를 높이 들어 올..
49일차 - 하느님의 음성이 하루 종일 내게 말씀하신다. God's Voice speaks to me all through the day. - 너의 일상적인 활동을 어떤 식으로든 방해하지 않으면서 하루 종일 하느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는 것은 상당히 가능하다. 진리가 머물고 있는 네 마음의 부분은, 네가 의식하든 의식하지 못하든, 끊임없이 하느님과 소통하고 있다. 세상 안에서 기능하면서 세상의 법을 따르는 것은 네 마음의 다른 부분이다. 늘 산만하고, 무질서하며, 몹시 불확실한 것은 바로 이 부분이다. - 하느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는 부분은 고요하고, 항상 편안하며, 전적인 확신 상태에 있다. 실제로 그것은 존재하는 유일한 부분이다. 다른 부분은 거친 환상이며, 광적으로 날뛰고 제정신이 아니지만, 어떤 종류의 실재성도 없다. 오늘 그것에 귀 기울이지 않도록 노력..
48일차 - 두려워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There is nothing to fear. - 오늘의 아디이어는 환상들을 믿는 자들에게는 사실이 아니지만, 환상들은 사실이 아니다. 진실로 두려워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것을 인식하기는 아주 쉽다. 하지만 환상들이 진리이기를 바라는 자들이 이것을 인식하기는 매우 어렵다. - 두려움이 있다는 것은 네가 너 자신의 힘을 신뢰하고 있다는 확실한 신호이다. 두려워할 것이 아무것도 없음을 깨닫는 것은 마음 속 어디에선가, 아직 그곳이 어디인지 네가 반드시 인식하지는 못하더라도, 네가 하느님을 기억했으며 그분의 힘이 너의 힘을 대체하도록 허락했음을 보여준다. 네가 기꺼이 이렇게 하려는 용의를 내는 순간, 정말이지 두려워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